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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에 관한 단상

1.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나 ‘작가’라는 말에서는 대단히 운명적인 냄새가 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무엇, 배워서 할 일도 아니고, 노력해서 될 일도 아닌... 그저 작가로 운명 지워져야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일, 그 일을 하는 사람들, 그들이 작가인듯하다.

2.
작품은 작가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작품은 전시를 통해 작가 개인의 차원에서 벗어나 공공의 차원으로 그 의미의 폭을 확장시킨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라는 말에는, 특히 현대미술의 차원에서는,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혹은 미적 영향력을 공공의 차원에서 극대화시키려는 사람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작가는 운명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전략적인 존재라고 해야 맞을지 모른다.

3.
작가가 전시 없이 좋은 작업을 꾸준히 견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수 많은 작가들이 여러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주기적으로 작품을 선보이고 대중과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전시 없이 꾸준히 작품을 제작하기 어려우며, 작품 없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4.
최지현은 작가가 되기 위해 미술대학을 다녔고 유학도 다녀왔다. 좋은 작품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 전시회를 개최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무엇인가, 자신이 느낀 것과 똑 같은 그 무엇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거라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처음으로 가졌던 개인전에서 그녀가 만난 ‘타인과의 소통 불능’은 그녀의 생각을 크게 바꾸어 버린듯하다.
이후 그녀는 전시라는 특정 형식을 통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본 자신의 주변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예술적으로 변화된다면 그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따라 전시 없이 작업하며 지난 수 년간을 지냈다고 한다. 전시 없이 수 년 동안이나 작품을 제작하고 그 사이에도 작업을 포기하지 않은 최지현은 그런 점에서 운명적으로 타고난 작가인 듯하다.

5.
반복 된
쌓기
잇기
자르기
6.
너무나 일상적이며, 작고 부질없는 시간과 기억, 물건들로 가득 찬 삶의 표상으로 최지현의 작업이 존재하고 있다. 기억의 맨 아래 층과 가장 위의 층에서, 세월의 이편과 저편에서, 잘려진 욕망의 네 모퉁이에서, 하염없이 찍어 나간 희망에서 시작이 되거나 멈추는 삶처럼 그녀의 작업이 놓여있었다.

7.
이른 아침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관계 속에서 흘러 간다.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통로는 흔적이다. 그 흔적은 반복적으로 쌓이거나 이어지며, 인위적인 잘림으로 제시될 뿐이다. 나는 최지현의 작업이  그 지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집 안 이곳 저곳에서 혹은 거리에 버려진 재활용품 더미에서 찾아낸 물건들이 기원의 돌 탑을 쌓듯 쌓아 올려져 흰색의 탑이 되었다. 흰색의 잡동사니 탑은 용도 폐기된 물건에서 삶의 흔적으로, 전시장 한가운데서 작품이 되었다. 잘 깎인 나무 연필들이 일렬로 이어져 벽면을 가로지르고. 잘 만들어진 정육면체는 네 모서리가 잘려 나간 채 벽면에 걸려 작은 전시장을 크게 채우며 함께 쌓여지고 이어지며 잘려나가는 삶과 시간의 증거로 존재하고 있었다.

8.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 걸까?
작가는 관객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작품을 만들지만 어느 순간 작품은 온전히 작가의 삶과 시간의 증거물로 더 큰 의미를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의 만족과 관객의 만족에는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그 차이의 넓고 좁음으로 우리는 소통의 가부를 이야기 한다.
하지만 소통이란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기라도 한가? 작품이 일상의 언어가 아닌 이상 보는 사람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은 이미 우리 시대에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다시 말하면 내 멋대로 즐기는 세상에 작가가 소통이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란다. 소통의 출발은 그 해방으로부터 시작되리라.

                                                                                                      (이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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